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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는 조선 초부터 그림을 관리하던 '도화서'가 있었다.
그렇다고 화랑이 즐비한, 전통문화의 거리라는 타이틀이 그때부터 명백을 유지해 온 것은 아니다.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이 조선을 점령한 뒤 조선 사회의 붕괴는
신분계급의 상층부에 있던 대부분의 양반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일이었다.
북촌에 거주한 많은 권문세가 양반들 역시 돈벌이가 없어지자
하나둘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북촌과 가까운 동네에 골동품 가게가 늘어났고, 그게 바로 인사동이 된 것.
외국인이 서울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이지만, 서울 고유의 색은 부족한 것 같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좀더 예쁘게 변신하려고 많은 공사를 했지만
한옥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 인사동에 한국 고유의 색을 심으려는 의도는 별로 없어 보인다.
서울의 대표 전통 거리라는 말은 아직도 한참 멀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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