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영&직장

삶이 있는 저녁

반응형

1. 이상과 현실

노동은 신성한 행위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사람의 생명은 하나같이 고귀하다는 말은 정치적 레토릭이거나

환상이거나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당위일 뿐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다.

노동의 강도가 세고 위험할수록 현장은 더럽고 아슬아슬하며,

직업은 그 숫자만큼 귀천에 차이가 있다.


2. 생명의 값

생명도 직업에 따라 다른 값이 매겨진다.

민사재판에서 판사의 주된 일 중 하나는 생명이나 신체에 값을 매기는 일이다.

사람이 누군가의 잘못으로 죽거나 다쳐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제기되면,

법원은 신체감정을 통해 노동능력을 얼마나 상실했는지, 그 사람의 월수입이 얼마인지를 조사하고,

정신적 고통까지 계량한 다음 몸값이나 목숨값을 산정한다.

많은 수입을 올리던 사람은 당연히 거액을 배상받는다.

1인력의 물리력밖에 가진 게 없는 사람은 도시일용노임이나 농촌일용노임으로 계산된 최저 배상금을 받는다.

그러니 회사가 가장 값싼 사람을 가장 위험한 일에 투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사람이 죽거나 다쳤을 때 가장 적은 배상금만 지급하면 되기 때문이다.


세상 아버지들이 쉬지 않고 일하는 이유는 단지 일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1인력에 불과한 세상 모든 아버지는 오롯이 자신의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한다.

두꺼운 팔뚝이, 빠른 머리회전이, 성실함이, 튼실한 다리가,

온갖 모멸을 견디는 뚝심만이, 그의 소박한 자본이다.


3. 오늘도 무사히

주 52시간 근무 시대를 맞아 이제야 저녁이 있는 삶이 왔다고 다들 호들갑이다.

'워라밸'이니 '소확행'이니 정체 모를 말들이 떠돈다.

크레인 기사로, 선박 용접공으로, 족장 비계공으로 허공을 떠돌고,

택시운전사로, 화물차 운전사로 양화대교를 건너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이들과 그 가족들의 소소하지 않은 유일한 행복은,

일하다 죽거나 다쳤다는 이야기가 그저 저녁 뉴스에 나오는 남의 이야기고,

일 나간 아빠와 엄마가, 장남과 둘째가 오늘도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