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의 정한론
19세기말 일본에서는 서양의 식민지 개념을 본떠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정한론이 대두되었다.
일본이 섬이 아닌 바다 건너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려니 표면적인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일본부를 꺼내 들었다.
한반도 남부에 일본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가 존재했고,
한반도 북부에는 중국의 식민지인 낙랑이 존재했다는 논리를 세운다.
태생부터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주장을 하기 위함이다.
2. 가야의 자료 찾기
일본 학자들은 명분을 입증할 자료를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찾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1907년 도쿄대 이마니시 류는 김해의 봉황대 언덕에서 김해 패총을 발견했다.
여기에서 한국의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일본 야오이시대~고분시대에 사용했던 토기와 유사한 것들이 발견되었다.
이건 현해탄을 두고 가까운 지역이니 교역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일본 학자들은 이를 <일본 서기>에 기록된 임나일본부를 상징한다고 단정하고,
이후 30여년간 추가 조사를 실시했다.
일제의 고고학자들은 이 결과를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적극 활용했다.
3. 일본의 제국주의 욕망
왜 일제는 특히 가야에,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 욕망을 투사했는가.
그 이유는 가야에 대한 문헌 기록이 너무 적게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가야는 점진적으로 신라에 통합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자료에는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한국의 식민지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일제는
가야를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거대한 나라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기마민족설로 이어졌는데,
이는 서기 4세기에 송화강 중류의 기마민족이 한반도를 거쳐서 일본열도를 정복했다고 한다.
북방의 유목전사가 세운 일본의 야마토국은 동아시아를 뒤흔드는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고,
따라서 한반도 남부를 정복할 수 있는 국력이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즉, 기마민족설은 변형된 임나일본부설인 셈이다.
역사 기록의 부족을 이유로 가야를 폄하하는 것도 문제지만,
일제의 식민사관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을 결여한 채 거대한 나라로 보려는 것은
자칫 일제의 논리로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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