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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번역을 포기한 단어, ’가방’과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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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방의 유래

 

1860년께 도쿄 시내를 지나던 일본 왕 무쓰히토는

길가 상점 간판에서 낯선 단어를 발견하고

시종에서 그 상점에서 파는 물건이 뭔지 알아보라고 지시함.

상점에 가 본 시종은 서양식 가죽 보따리를 파는 곳이라고 보고.

간판 글자는 がばん(가반)이었고, 사실 간판 글자는 주인이 잘못 표기한 것.

그러나 왕이 부른 이상

그 때부터 서양식 가죽 보따리는 가반이 되었다는 것이

가방의 유래에 대한 유력한 속설 중 하나.

 

2. 구두의 유래

또한 일본 개항 이후 미국인 잡화상점에 구경 온

일본인이 가죽 신발을 사기 위해 미국인 주인에게 말을 걸었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자 오해가 생겼음.

이 가게에서 파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 걸로 생각한 주인은

잡화goods라고 답하고, 일본인은 그렇게 생긴 신발을

굿쯔라고 하는 줄 알고 구츠라고 불렀고, 이후 한국에서 구두가 됨.



최초의 번역은 언제나 자기들의 언어와 결합한 지식으로는

들여다볼 수 없는 혼돈의 세계와 교류하는 일.

둘 사이에서 일치하는 것을 찾아 대응시키고,

비슷한 것이 있으면 변형시키며, 없으면 창조해야 하는 버거운 일.



19세기말 뒤늦게 서양과 접촉한 조선은

일본과 중국이 대응시킨 단어들을 가져다 쓰기만 하면 되는

후발 주자의 이점을 누린 것은 사실이나,

독자 번역할 기회를 잃은 탓에

한국인들은 자기 문화 전체를 성찰하고 서양문화 전반을 주체적으로

관찰할 기회도 잃었음.

민주주의, 이념, 철학, 인문학 등 일본인들이 번역한 단어는

해방 이후에도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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