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우리를 집중시킨다.
우리는 한 도시의 핵심으로 돌진한다.
변두리의 단조로운 주택가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현지인들이 겪는 자잘하고 어지러운 일상을 잠깐 맛볼 수는 있지만
오래 지속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여행자는 도시의 정수만을 원한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살핀다.
현지인들은 심드렁하게 지나치는 건물과 거리에도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어댄다.
여행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들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행은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도 소설과 닮았다.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다가,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
독자와 여행자 모두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장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할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살던 동네가 다르게 보이고 낯설게 느껴진다.
주말 홍대 앞의 인파가 새삼 무시무시하게 느껴지고,
서울이 거대도시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다른 사람의 몸을 치고 지나가는 게 전과는 달리 불쾌하고,
한강은 평소보다 더 드넓어 보인다.
식당이 밀집한 거리를 지나갈 때면 한국 음식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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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비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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