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은 세가지 측면에서 파리가 지구촌의 문화수도가 될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 에펠탑은 과학혁명의 산물이다.
세계박람회장 관문을 만들기 위한 건축 공모를 할 때
프랑스 정부는 '기술적 진보와 산업 발전을 상징할 기념물'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에펠탑은 금속 7,300톤을 포함해 전체 무게가 1만 톤이 넘으며,
자체 하중과 바람의 압력을 거뜬하게 견뎌낸다.
발명왕 에디슨이 괜히 공학의 발전과 기술자들의 능력을 찬영하는 글을 방명록에 남긴 게 아니다.
프랑스의 과학자, 엔지니어, 수학자 72명의 이름을 탑에 새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 에펠탑은 공화정이라는 프랑스 정치제도의 특징을 체현하고 있다.
왕이나 교황이 취향 따라 만든 게 아니라 공모 절차와 전문적 평가를 통해 디자인을 결정했으며
전문가와 비평가들이 아니라 대중이 좋아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에펠탑은 민주주의 시대 도시의 주인은 권력자가 아니라 시민이며,
시민이 선출한 정부가 합당한 과정을 거쳐 중대사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펠탑은 혁명의 심장이었던 도시의 대표 건축물로 손색이 없다.
셋째, 에펠탑은 자유와 평등, 인권의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고대와 중세의 왕궁이나 교회와 달리 에펠탑은 개인이 디자인한 예술품이며
노예 노동이나 강제 노동 없이 축조했다.
디자인을 설계한 에펠은 물론이요 과학자, 수학자, 엔지니어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위험이 따르는 작업을 수행한 노동자들도 저마다의 권리를 누리면서 일했고,
당국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의 안전 조치를 했다.
자본주의는 격차와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지만
적어도 공공연한 강제 노동이 없다는 점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질서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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